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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

[문장수집]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_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 문장수집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그렇게 많은 문상훈을 봤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문상훈의 얼굴이 이 책에 있다.” (작가 이슬아) 13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크리에이터 문상훈이 첫 산문집을 출간했다. 문쌤, 문이병, 문상 등 다양한 부캐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소식이 새삼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오랜 팬이라면, 혹은 매체를 통해 그의 편지글 한 문장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기다려왔을 소식임이 분명하다. 문상훈을 대표하는 〈빠더너스〉 채널 소개란에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콩트와 코미디 영상을 만듭니다”라고 적혀있다. 뛰어난 캐릭터 분석과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은 코미디로 웃음을 주는 것이 그의 본업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말’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오해할까 봐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이 책에서 고백한다. 자신의 말을 가장 오해한 사람은 문상훈, 자신이었다고. 이 책은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이라는 제목처럼 문상훈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문상훈의 새로운 얼굴이다.
저자
문상훈
출판
위너스북
출판일
2024.01.05


너무 좋잖아!!!




p34
나는 다시 말해서 누가 읽을 것이 아니라면 일기를 쓰 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누가 봐야지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 대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말을 최대한 많은 사람 앞에서 가장 잘하고 싶어 목소리 가다듬으며 연습하는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


p35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라는 것도 알겠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도 어렴풋이 알겠는데,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다.


p37
결국 나는 오늘도 일기를 다 완성하지 못하고 덮는다. 나는 언제쯤 누가 보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를 잘 들여다볼 수 있을지, 커가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p46
하룻밤을 도화지 삼아 후회로 멋지게 채색한 다음 날 아침은 또 다른 후회를 뒤집어쓰며 시작한다. 어젯밤엔 분명 내일부터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다짐했는데,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는 이미 지각을 피할 수 없는 기상 시간과 찌뿌둥한 컨디션 때문에 어제보다 더 안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어제 반성의 시간을 가져서 오늘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p53
스무 살이 지나고 꿈의 크기와 미련의 크기가 역전되어가는 과정을 넘기면서 그 시절을 자주 회상한다. 꿈의 크기는 점점작아지고 미련의 크기는 커질수록, 내가 소 년일 때 배웠던 낮과 밤의 지식들이 지금까지도 남아있 는지 보따리를 뒤적이게 되는 것이다. 담아 두었던 세상의 진짜 이야기 중 나는 지금 어디까지 확인했고 무엇이 남아있는지. 하굣길에 마중 나왔던 보도블록과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한지 궁금하다.



p58
커가면서 알게 된다는 세상 물정과 현실, 한계를 되도 록 모르고 싶다.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해서 바보같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 겸손의 너스레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믿어서 실패할 때의 데미지가 작았으면 좋겠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시도해온 일들보다 도전해볼 다음 기회가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때가 왔을 때 그 이유를 싱겁게 나이나 세월에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p60
자신을 오래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들은 천천히 늙는 다. 내 잘못과 부족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은 사과도 쉽게 한다. 나이 드는 것과 실수가 줄어드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어른은 실수 안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의 실수를 감추려고만 하니 도리어 실수도 더 많이 한다.
베갯머리에서 하루를 반성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모르는 내 못난 모습도 숨기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런 밤들은 세포들이 노화하지 않고 성장한다.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내가 질투가 났다고, 미안하고 내가 부족했다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소년이다. 나는 매일 미숙하고 질투해서 오늘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소년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p67
맞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숫자를 알아내어 필요할 때에 외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매일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실망시키며 답을 찾아갈 것이다.


p74
직업들을 이야기할 때 운동선수 작가 가수 기자 배우 감독 화가. 그런데 시인은 시 뒤에 사람 인자 하나 붙는 다. 시인, 세상의 맨 처음 시인이 시 쓰느라 바빠서 이름 생각할 새도 없이 그냥 시 뒤에 사람 하나 붙였나 보다.
그 다음 시인들도 시 쓰느라 바빠서 그냥 그렇게. 시인들 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나는 시인들이 시 쓰느라 바빠서 못하는 것들 을 내가 나눠서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p82
어떤 기준으로 지우고 새기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일상에서의 힘든 순간도 시간으로 숙성되면 언젠간 달콤해지겠지 정도를 위안으로 삼는다.


p86
나는 내 친구들을 오래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은 나를 금방 잊었으면 좋겠다.


p92
입시 학벌 직업 돈 명에 모두 행복이라는 아 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다. 이유는 사실 집값인데 더 나은 환경에서 행복하기 위해. 사실은 부모의 자아실현을 자식에게 무리하게 투영하는 것인데 자식이 보다 행복 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우러러보이고 싶은 열등감의 발로인데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쉽게 들이밀고야 만다. 이미 너무 많은 선을 넘었다 고 생각한다.


p98
어떻게 살아도 후회만 남을 청춘의 시간을 너와 보낼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


p108
나는 다시 그곳에 남겨져서 요란하게 떠나간 이들의
어수선한 빈자리를 조용히 정리하는 마음을 배워야 한 다. 누가 마시던 잔인지 누가 깬 그릇인지 찾지 않기로 한다.


p116
그런데 나는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금방 탁해지는 어항같은 사람이더라고요,


p123
상대의 표현이 서툰 것을 보고 마음이 작다고 여기지 않는 사려가 있으면 좋겠다.


p125
드는 생각과 기분을 다 이야기 하지 않고 그냥 그 앞에 조용히 두고 오는 법을 알아가기로 한다. 오늘 밤에는 꼭.


p128
대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푸는 것을 함부로 사랑 이라고 하지 않듯이 대답을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짝사랑의 완성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마음은 주는 법을 알아야 받을 수 있다.


p139
뒤돌아보지 않겠 다고 약속하고 멀어지고 또 멀어졌는데 지구는 둥글어서 나는 결국 당신 앞에 와서 앉아 있다. 오랜만에 본 당신은 더 근사하다. 이게 날 미치게 한다.

p149
나는 이제 함부로 사랑할 것이 없었다.



p150
겨울과 여름의 끝에서 다시 여름과 겨울을 기다리고 싶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의 존재를 믿기보다는 부재하는 것 의 존재를 믿을 때 그 믿음이 더 간절해진 역사를 살아왔 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태껏 영원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완전한 끝도 본 적이 없다. 결국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일지라도 너와 내가, 어린 시절에 엄마와 아빠가,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사랑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