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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

[문장수집] 세자매_안톤체호프

📓세자매_안톤체호프

바냐 아저씨
바냐 아저씨 어느 시골에 교수 부부가 온 뒤부터 사람들의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바냐는 한때 누이동생의 남편이자, 학자로서 존경해 마다않던 세레브랴코프를 비난하고 그의 아내인 엘레나를 사모한다. 바냐는 세레브랴코프의 현재 부인인 엘레나에게 청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시골 농장을 관리하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레브랴코프가 조카 소유의 시골 농장을 팔자고 하자 바냐는 극도로 흥분하게 되는데……. 세 자매 프로조로프가의 세 자매 올가, 마샤, 이리나는 모스크바에서 자란 교양 있는 여성들이지만 아버지의 인사 발령 때문에 지방 도시로 온 후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모스크바를 동경한다. 맏딸인 올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마샤는 남편이 있지만 모스크바에서 온 군인 베르쉬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막내 이리나는 모스크바에 가고 싶은 마음에 사랑하지 않는 투젠바흐와 약혼을 하지만, 그녀를 남몰래 사랑하는 솔료느이가 투젠바흐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한편 세 자매의 오빠인 안드레이는 학자가 되리라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속물스러운 부인 나타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저자
안톤 체호프
출판
더클래식
출판일
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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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쉬닌
아니 저런! (웃는다.) 쓸데없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요!
지적이고 교양을 갖춘 사람은 아무리 지루하고 조용한 도시에도 꼭 필요한 법입니다. 거칠고 무지한 이 도시의 주민들 10만 명 가운데 당신 같은 사람이 딱 세 명 있다고 칩시다. 물론 그들에게는 아직 무지몽매한 대중을 이길 힘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조금씩, 조금씩 대중처럼 변해 가겠죠. 그렇다고해서 그들의 흔적마저 사라지진 않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세 명 덕분에 비슷한 여섯 명이 생겨날 테고, 또 그다음엔 열두 명이 생겨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게 될 겁니다. 그러면 이백 년, 삼백 년 뒤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놀랍게 변할 테지요. 인간에게는 그런 삶이 필요합니다. 아직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꿈꾸며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인간은 선조들이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워야합니다. (웃는다) 그런데 여러분은 쓸데없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불평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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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젠바흐
당신은 미래의 삶이 아름답고 놀랍게 변할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옳은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루기 힘든 꿈이지만 그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그 미래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우린 준비해야 합니다. 일을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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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르이긴
여러분, 오늘은 일요일, 안식일입니다. 그러니까 각자 나이와 신분에 알맞게 쉬면서 즐겁게 지내요. 이제 여름이니 양탄자는 겨울까지 잘 보관해야 합니다.... 방충제나 나프탈렌을 넣 어 놔야겠죠. 로마인들이 건강했던 이유는 일하고 쉴 때를 명확히 나눴기 때문이에요. 그들에게는 Mens sana in corpore sano (라틴어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뜻_ 옮긴이)가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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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
(큰 목소리로) 축하합니다. 항상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랍니 다! 오늘 날씨가 진짜 좋네요. 정말 기가 막히네요. 오늘 오전 내 내 학생들과 산책을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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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모스크바의 어느 레스토랑의 넓디넓은 홀에 앉아 있으 면....내가 아는 사람도, 나를 아는 사람도 없지. 하지만 조금도 서먹하거나 낯설지 않아. 하지만 여기는 모두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이인데도 남남이나 다를 바 없이 낯설어. 이방인 .....외로운 이방인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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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아무래도 다른 일을 찾아야겠어. 전신국은 나랑 안 맞아. 내 가 그토록 바라고 꿈꾸던 게 없어. 시(한자)가 없이 그저 의미 없는 일들...... (마룻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의사 선생님이야. (투젠바흐에 게) 저 대신 대답 좀 해주세요. 도저히 피곤해서 못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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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젠바흐
흠………. 우리가 죽고 난 뒤에 미래 사람들은 풍선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외투 모양도 지금과 달라지겠죠. 어쩌면 여섯 번째 감각을 발견하여 그것을 더욱 신장시킬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사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과 똑같이 힘들기도 하고 알 수도 없고 또한 행복이 가득하겠지요. 그래서 천 년 뒤의 인간도 "아아, 산다는 건 힘든 일이야." 하고 탄식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기를 원치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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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쉬닌
(잠시 생각하더니) 난 잘 모르겠군요.....내가 보기엔, 세상의 모든 것은 서서히 변화해야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서 상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백 년, 삼백 년, 아니 천 년이 지나면 훌론 얼마나 미래인가는 중요치 않지만, 행복한 새 인생이 찾아올 겁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새 인생을 겪어 볼 순 없겠지만, 우리는 미래의 삶을 창조하는 과정에 있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노동하고 있고, 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겠죠. 거기에 우리의 존재 의미가 있고, 또 우리의 행복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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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쉬닌
얼마 전에 어느 프랑스 장관이 쓴 옥중일기를 읽었어요.
그는 파나마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죠. 감옥 창문 밖으 로 새들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넘치는 감격과 기쁨을 묘사했더군요. 예전에 장관일 때는 그런 새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물론, 자유의 몸이된 지금은 다시 새 따위는 그의 눈에 들어 오지도 않을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정작 모스크바에 살게 되면 모스크바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행복은 없어요, 행복해질 수도 없고. 그저 행복을 갈망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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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젠바흐
(코냑 병을 들고 솔료느이한테 간다.) 늘 혼자 앉아 뭘 그리 생 각하고 있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자, 우 리 화해하자. 코냑 한잔 어때? (마신다.) 난 오늘 밤새 피아노를 칠 거야. 물론 시시한 곡들만 연주하겠지만. 알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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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부트이킨
그랬나.....어머니 시계라면 어머니 시계가 맞겠지. 어쩌면 내가 깨뜨린 게 아니라, 내가 깨뜨린 것처럼 보일 뿐일 수도 있지. 어쩌면 우리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아니, 이 세상에 누가 아는 사람이 있겠소. (문 옆에 서서) 다들 뭘 보는 거지? 나타샤는 프로토포 포프와 놀아났는데, 당신들은 아무것도 못 보는군.....아무것도 모른 채 여기 이렇게들 앉아 있을 뿐이지. 나타샤는 프로토포포프 와 놀아났는데......(노래한다.) "당신에게 무화과를 드려도 될까 요?…....”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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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쉬닌
(..)
하지만 오늘과 그때의 일에는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또 좀 더 세월이 흘러서, 그러니까 앞으로 이백 년이나 삼백 년 후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 경악하며 비웃는 듯한 눈길로 바라볼 것입니다. 미래에는, 오늘날의 모든 것이 기묘하고, 거칠고, 이상하고, 불편해 보일 거예 요. 아, 얼마나 아름다운 미래가 올까요! (웃는다) 죄송합니다, 또 다시 개똥철학을 늘어놓고 말았군요. 하지만 여러분, 더 이야기하고 싶군요. 오늘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이) 우리는 모두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지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올까요! 생각해 봐요......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지금은 이 도시에 세 명뿐이지만,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는 그 숫 자가 점점 더 불어나서 언젠가는 모두가 여러분처럼 되고, 여러분 처럼 살게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변해 가는 사이 당신 같은 사람들도 나이가 들고, 우리보다 더 나은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태어날 것입니다......(웃는다.)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하군요. 나는 살고 싶어요...(노래한다.) " 사랑에는 나이의 구별 없나니, 그고 통은 값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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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
(...)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게 될까,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소설을 보면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 정작 내 얘기가 되니, 아무도 정답을 말해 주지 않아. 결국 자기 일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 올가 언니 그리고 이리나.....고백했으니까 이제부터 아무 말도 안 하겠어......고골의 광인처럼 나도……. 침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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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젠바흐
쓸모없고 보잘것없는 일들이 갑자기 인생에서 중요해지 는 순간이 있지. 별거 아니라고 그냥 웃어넘겼다가는, 어느새 돌이 킬 수 없이 치명적인 것이 되지. 아, 이런 얘기는 그만두지. 난 정말 상쾌한 기분이야. 저기 보이는 전나무, 은행나무, 자작나무는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나무처럼 새롭게 느껴져. 나무들이 마치 호기 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가 뭔가 행동하길 기대하는 것 같아. 아, 나무들은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가! 저런 나무 아래서 살아가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이! 어이! 하는 고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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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쉬닌
당신에게 어떤 작별인사를 드려야 할까요? 무언가 철학적인 말이라도 할까요? (소리 내어 웃으며)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허하고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삶은 분명 점점 더 밝고 안락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생이 완전한 행복에 다다를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계를 들 여다본다.) 시간이 되었군요. 가야해요! 여태껏 인류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원정과 침략과 승리로 가득 채우며 전쟁에만 몰두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은 이제 쓸모없어졌습니다. 남은 건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거대한 공허뿐이지만, 인류는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한시라도 빠르면 좋겠죠! (사이) 아시겠지만, 만일 노동에 교육을 더하고, 교육에 노동을 더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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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올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이 모든 게 무엇 때문인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거야. 그땐 어떤 비밀도 남지 않겠지. 그동안 우리는 살아가야 해..... 일을 해야지. 일을 해야겠어! 내일 나는 혼자 떠날거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 들을 위해 내 모든 걸 바치겠어. 지금은 가을이니 곧 겨울이 오고 눈이 쌓이겠지. 그렇지만 나는 일하고 또 일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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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두 동생을 꼭 껴안으며) 저토록 즐겁고 힘찬 행진곡 소리를 들으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 하느님! 세월이 흘러 우리가 죽으면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겠지. 우리 얼굴, 목소리, 그리고 우리가 몇 사람이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은 후손들을 위한 기쁨으로 변할 것이고, 행복과 평화가 찾아올 거야. 그리고 그날이 오면 현재의 우리에게 고마워 하며 기억해 줄거야. 아, 마샤, 이리나,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않았어. 굳세게 살아가는 거야! 음악이 저렇게도 밝고 기쁘게 울려 퍼지는 걸 들으니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그것만 알 수 있다면, 그것만 알 수만 있다면!